이순신이 학익진을 만든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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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3-04-12 09:08 Hit387.본문
설마 했다. 민지는 기간제 교사를 하고 있긴 하지만 소설책도 낼 정도의 인기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연극부 담당 교사를 하고 있었다. 김승기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가신 후 민지도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는데
이제는 인턴 간호사나 인턴 간호조무사가 생겨서 1개월짜리라도 빈 공간이 생기면 따로 뽑아서 단기간에 배운 것도 경력으로 인정하고 다른 회사에 취업에 도움이 돼야 합니다. 따라서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야 출산휴가가 자유롭지 않겠습니까? 의사들 출산휴가
내가 돈을 준비해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호씨 언니가 내 흉을 본 거야. 나는 굶었는데 말이야. 대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사람들에게 고깃값을 낼 수 있겠어? 평소에도 엄마한테 일주일에 2만 원 겨우 받는데
PET scan 등 수많은 검사와 항암치료를 시행하였고
유모차를 끌고 다녀서도 안 된다. 계단이 수도 없이 많은 건물은 승강기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운 좋으면 완치도 되요!'
'치아라- 됬다 나는 그냥 갈란다' 하고 껄껄 웃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얘기했다.
'항암 안하시면 2달도 채 안남았어요. 가족분들한테도 시간을 주셔야죠'
그제서야 진지한 얼굴을 하고서는 내 눈을 바라보던 환자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급한 일을 처리하고 당직에게 인계를 하고 나니
차후에 지역 옮기는 방안도 생각해 내겠습니다. 모두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를 다 갈 수 있습니다. 이제는 사립학교에 원서를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간호사 월급을 올려 드리겠습니다. 아마도 50만 원씩 월급을 더 주는 제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2차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 중에 경력이 5년 이상 된 간호사부터는 월급이 50만 원 이상 오르는 방안을 검토하겠습니다. 호봉제 같을 것입니다.”
“또한 청년들 취업 문제가 있고 경력단절여성들의 취업 문제가 있습니다. 한부모라든가 미혼모
700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큰 병원을 가도 만 7천 원인가? 2만 원 조금 더 들어가거나 하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진단 받으러 병원에 어떤 분이 갔는데
지금 당장 방을 구할 수도 없고요. 겨우 월세를 구한다 해도 보증금을 낼 돈이 없고 고시원 같은 곳을 구해야 해요. 그나마 그 돈도 20일이 돼야만 나와요. 겨우 알바해서 번 돈인데요. 그런데 오늘은 통장에 돈이 12만 원밖에 없어서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어요.” 그 여대생이 말했다.
“학교는 어디 다니는데요?” 박민지가 말했다.
“서울여대예요.” 그 여대생이 말했다.
“아. 대학교 근처 월세를 구하는 중인 거죠. 일단 우리 집으로 가요.” 박민지가 말했다.
민지는 다행히도 학교 근처 하숙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하숙집은 오직 여학생들만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친구들을 데려와도 되는 곳이었다.
“우리 집은 제 방이 좀 커요. 두 명이 잘 수 있을 거예요. 한 달에 40만 원 정도 내는 곳이에요. 식사는 하숙집 아줌마가 다 해주셔서 괜찮아요.” 민지가 말했다.
민지는 그 여학생을 하숙집으로 데리고 갔다. 민지가 대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살고 있는 하숙집이었다. 주인아줌마는 같이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집에서 사시고 그 집은 오직 하숙집으로만 만들어진 곳이어서 월세 느낌이 강했다. 다만 하숙집이기 때문에 식사는 주인아줌마 집으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식사하고 학교를 갔다.
“사실 엄마는 계모예요. 그래서 폭력이 있었어요. 계모랑 살기 싫어서 그래서 이렇게 된 거예요. 어릴 때 엄마와 헤어져서 파출소에 가게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마지막 남은 나에게 시선이 쏠렸다.
내성적이고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지금까지 계급별로 직업을 가지는 일이 제한적이었고 각 개인의 성격과 취향
어머니 방에좀..“
”네 알겠습니다“
그러나 김인숙씨는 나를 보고 고갯짓을 하고 휠체어에 탄채로 방으로 들어갔다.
”술 한잔 하시겠어요?“ 하며 부엌으로 걸어가자
”술 정말 좋아하시네요